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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헌의 독서파크(18)] '말하지 않는 세계사<2>'서울패미리병원 해헌(海軒) 강일송 병원장
양산뉴스파크 | 승인2021.04.16 10:25
 최성락 저자의 '말하지않는 세계사'.(사진제공=해헌)

 지난번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말하지 않는 세계사'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오늘 이야기는 유대인에 대한 것이다.

 유대인은 성경에서 나온대로 선택받은 민족, 즉 선민사상을 가진 민족이다. 노벨상을 받는 비율도 높고 전 세계 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력한 민족이다.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를 유랑하다가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소강국을 만들었고, 초강대국인 미국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들어본다. <해헌(海軒) 주>

 [시작하며]

 히틀러 나치당의 유대인 차별과 학살은 악명높다. 그러면 서구 다른 나라들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을까?.

 사실 유대인 차별은 서구사회에서 뿌리 깊은 것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역사상 몇 번이나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유대인은 게토(Ghetto)라 불리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살아야 했다.

 무엇보다 유대인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다. 우선 유대인은 귀족이 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그래서 귀족만 될 수 있는 군대의 장교, 고위 공무원, 정치인이 될 수 없었다.

 또 농토를 소유하는게 불가능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서구의 기술직은 대부분 길드 제도였는데 어려서부터 길드에 소속되어 길드 내에서 자라야 했다.

 하지만 유대인은 길드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기술직업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유대인은 장사를 하거나 사람들이 꺼리는 직업만 가질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일에 종사를 했고, 죄악이라 여기는 고리대금업을 했다.

 그 일이 지금은 금융산업이 되어서 세계의 금융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이 금융을 하게 된 것은 그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다.

 서구사회에서 유대인은 항상 차별을 받았던 민족이다. 히틀러가 나오기 전 20세기 초 유대인 차별이 가장 심하고, 유대인을 제거하려는 프로젝트를 주창한 것은 사실 미국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 반 유대인 정책의 모범국가는 미국이었고 히틀러도 미국처럼 유대인들에게 대하여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원에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표어가 처음 나온 곳이 미국 뉴욕이었다. 미국의 신문 <디어본 인디펜던트(Dearborn Independent)>는 유대인을 공격하는 신문으로 유명했다.

 유대인은 사회적 악이고, 유대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논조를 계속 유지했다. 이 신문은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의 소유였고 히틀러는 포드를 전우로 여겼고, 독일에서 이 신문을 계속 보았다.

 즉 히틀러의 반유대인주의의 상당부분은 이 미국신문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다.

 히틀러는 독일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여기고 다른 민족들을 차별하고 학대했다. 이러한 민족 차별주의도 미국이 먼저다.

 1901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의 우월성은 앵글로 색슨족의 우월성 때문에 나온다고 하였다.

 다른 민족과 섞이는 것은 민족의 순수성과 우월성을 떨어뜨린다고 하여 1924년 미국에서는 이민제한법이 시행된다.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에 대해 강제 불임수술을 처음 시도한 것도 미국이다. 범죄자, 정신장애인, 걸인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시행이 되었는데, 1907년에 이미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강제 불임 수술이 시작되었다.

 1930년대에는 미국 30개 주에서 강제 불임수술법이 통과되어 시행되었다. 히틀러보다 훨씬 앞서서 시행된 것이다.

 미국이 독일만큼 유대인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사실 미국이 유대인을 덜 차별해서가 아니라 미국에는 유대인보다 더 낮게 취급당하는 민족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에는 주로 백인들만 살았다. 백인 중에서는 유대인과 집시가 가장 낮은 계급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공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흑인, 황인이 있었다. 흑인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하층계급을 담당하니 제거하려고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갑자기 미국사회에 들어온 황인은 제거대상이었다.

 동양인의 미국이주는 19세기부터 많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1902년에서 1905년까지 7,200명이 하와이로 이민했다.

 주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일꾼들이었다. 또한 서부개발에 동양인의 힘을 많이 빌렸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를 잇기 위해 대륙횡단철도를 만든다.

 1869년 완성이 되는데, 이 것은 미국 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꼽힌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는 공사는 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맡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들어가는 공사는 중국인과 인도인, 특히 중국인들이 맡았다.

 힘들고 어려운 공사는 근면하고 순종적인 중국인들의 공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미국사회에 중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중국인 남성만 이민을 받고 여성을 받지 않았다.

 이 후 불법으로 여성들이 유입되었고 계속 중국인의 이민이 이어지자 1924년 중국인의 이민을 완전히 금지한다.

 또 대표적인 미국 인종차별 정책의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계를 모두 수용소에 가둔 일이다.

 미국은 1941년 일본과 전쟁을 시작하자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12만명을 사막 한가운데 가둔다. 일본사람이 아니고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2세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일본에서도 전쟁이 나자 일본에 살고 있는 백인들을 모두 수용소에 가두었다. 그런데 미국은 같은 적국인 독일계, 이탈리아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로지 일본계에 대해서만 사막에 가두었다.

 미국은 독일 못지않은 인종차별을 시행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그리고 서양사회에서 유대인 차별, 민족 차별데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독일의 유대인 학살 때문이었다.

 전쟁기간 동안 미국은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비난했다. 독일의 비인도적인 측면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유대인 학살, 집시학살이 알려지자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이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였고, 자기도 더는 유대인을 차별하기 힘들어졌다.

 더 이상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족 우월주의, 민족차별을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게 된다. 민족 차별주의의 선두주자였던 미국은 이 때부터 민족차별을 주장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마치며]

 오늘은 '말하지 않는 세계사'의 두 번째 이야기를 다뤄보았다. 유대인은 어디를 가나 이슈를 만들어 낸다. 오늘 유대인 차별이라는 주제로 미국과 연관지은 내용을 보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와 다름을 싫어하고 그 다름을 하위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중심주의가 그 가운데 있기도 하고.

 일단 유대인 차별의 그 뿌리를 보면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한 데에 그 근원이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십자가에 못을 박기까지 하였다.

 기독교화된 유럽에서 볼 때 유대인은 미움의 대상이다. 거기다 나라도 없이 떠도는 집시같은 힘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유대인이 전 세계금융을 쥐고 흔드는 것이 그들에게 다른 고위직이나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게 하지 못하게 해서였다.

 그들은 특유의 선민사상과 민족주의 근면성 등으로 잡초처럼 어디를 가든지 살아남았고 부를 이루었다.

 제가 볼 때는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것은 열등감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이전부터 게르만족은 용병이나 하고 로마가 문명을 이루고 있을때 미개한 민족이었다. 중앙집권의 통일국가도 독일이 제일 늦었다.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보면 1850년대에 쓰여졌을 이 글 내용에, "독일인들은 하도 자주 바뀌어 자기 국경을 모른다"라는 말이 나온다.

 오늘의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독일의 유대인 차별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유대인에 대해 차별하고, 동양인에 대한 이민금지법 통과, 흑인 노예제 등을 본다면 미국이 차별에 관해서 더 앞서 있다고 보인다.

 그런 미국이 유대인의 학살이 후 세계대전이 끝나자 민족차별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관점을 달리해 세계사를 본다면 흥미가 더해진다.

 <강사소개>

 해헌(海軒) 강일송

 현 서울패미리병원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림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과정(AFT) 수료.

 <저서> ▶우리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우리아이 변비와 야뇨증 거뜬히 이겨내기, ▶초보 육아 거뜬히 이겨내기, ▶더바이블 육아 소아과 수업 3권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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