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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헌의 독서파크(95)] '미학 오디세이-<진중권>'서울패미리병원 해헌(海軒) 강일송 병원장
남성봉 기자 | 승인2022.01.13 22:08
 진중권 저자의 '미학 오디세이'.(사진제공=해헌 강일송)

 이번 이야기는 앞서 다뤘던 <이미지 인문학>의 저자 진중권 교수의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 미학에 대한 책을 한 권 본다.

 진 교수는 서울대 미학과 출신에, 같은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를 하였고 독일 유학 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학(Aesthetics)'이란 오래된 학문은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1714-1762)이 미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고 독자적인 철학의 분야로 확립했다.

 오늘은 예술의 시작이 되었던 선사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해헌(海軒) 주>

 [시작하며]

 19세기 말에 구석기인들의 동굴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그림이 위작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1만 5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미개인들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히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예술사에서 이 정도의 표현을 찾아보려면 한참이나 뒤로 내려와야 한다. 그 뒤 유럽과 아프리카의 곳곳에서 놀라운 사실성을 보여주는 벽화들이 발견된 후 이 그림들은 위작의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예술이 탄생하고 동시에 이처럼 단번에 생생한 자연주의적 묘사수준에 도달한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놀라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구나 더 뛰어난 정신능력을 가졌던 신석기인들은 오히려 기하학적, 추상적 양식으로 후퇴(?)를 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에 의하면,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리는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해서 그림을 그린다. 어린이들은 결코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들은 '아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구석기인들은 아직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로 발달하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다.  

 개념적 사유가 없는 이 눈을 '벌거벗은 눈'이라고 표현해 보자.

 신석기 시대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냥감을 쫓아 다니던 인간은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농경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농경은 인간의 사유능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도의 추상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연현상에 대한 최초의 추상은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관념이었을 것이다.

 농경은 인간이 변화무쌍한 현상들 속에서 어떤 '운행질서'를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연의 여러 현상들 중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개념'을 뽑아내었다.

 그 뒤 인간들은 외부세계를 파악하고 정복하기 위해 점점 더 추상적인 사유에 의존한다. 이러한 사유가 신석기 시대의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을 설명해준다. 

 이들은 구석기인들이 가졌던 '벌거벗은 눈'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묘사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현존하는 미개부족들은 신석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을 보여주는데 반하여, 아직 구석기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부시맨에게선 자연주의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왜 예술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을까?", "감상하려고?", 아니다. 

 감상을 위한 예술의 전통은 겨우 몇 백년 밖에 안된다. 르네상스 때 조차 예술은 뚜렷한 실용적 목적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인류 최초의 그림들은 대개 깊숙한 동굴 속에 있다.

 알타미라 동굴로 가보자. 거기에 나오는 동물은 사냥감이 되는 동물만 나타난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는 신석기 벽화에는 동물 대신에 나무나 농작물, 해와 달처럼 농경과 관계 깊은 자연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예술은 노동에서 비롯하였다. 원시인들의 '수렵무(狩獵舞)'는 배가 불러 에너지가 남아돌 때가 아니라, 짐승을 잡지 못해 오랫동안 굶주렸을 때 추는 거라고 한다.

 즉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서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동굴벽화에는 대개 창이나 도끼로 가격한 흔적이 남아있다. 그건 그림 속의 들소를 죽임으로써 살아있는 들소를 잡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 때문이었다. 벽화나 수렵무 속의 '가상'이 그들에게는 곧바로 '현실'이었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수우족 인디언은 어느 탐험가가 들소를 스케치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불평했다.

 "저 사람이 들소를 여러마리 자기 책 속에 넣어 갔다. 그 때부터 우리는 들소를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쓸데없어 보이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놀랍게도 주술이 실제로 효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 동굴벽화는 원시인들이 경험에서 얻은 동물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구석기 벽화가 그토록 사실적인 것은 동물을 쫓는 예리한 사냥꾼의 눈으로 관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동물의 동작과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 급소가 어디에 있는지 등은 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이었다.

 부정확한 묘사는 사냥을 망치거나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동물의 신체를 정확하게 묘사해야 했다.

 수렵무도 마찬가지다. 사냥꾼으로 분장한 무리와 동물가죽을 둘러쓰고 동물역할을 하는 무리의 춤꾼들이 등장한다. 

 이 또한 더 많은 동물을 잡고 싶다는 소박한 주술적 신앙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춤은 기능은 다른 데 있다. 이 춤을 통해 그들은 사냥의 절차와 테크닉을 반복해서 학습할 수 있었다.

 또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극의 구조는 사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격렬한 동작은 사냥에 필요한 신체단련을 해 주었다.

 그 당시는 예술이 주술이고, 주술이 예술이었다. 둘 사이엔 아무런 구별도 없었다. 그리고 이 것이 당시로서는 유일한 지식체계이자 정보저장과 전달의 수단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고달픈 삶 속에서도 예술활동을 계속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행했다.

 [마치며]

 오늘은 '미(美)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또한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있기에 미는 보편성도 있다고 보인다.

 사람들은 균형과 비례가 맞으면 대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미'는 개별성과 보편성을 다 함유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저자는 미와 예술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선사시대의 예술작품인 동굴벽화를 통해 거꾸로 풀어나간다.

 인지와 모든 뇌의 능력이 떨어졌던 구석기시대의 벽화가 더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보이는 것을 '벌거벗은 눈'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농경과 함께 시작된 인간의 추상능력, 즉 개념을 뽑아내는 능력이 생기면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벽화는 후대에 대한 생존기술의 '저장과 전달'의 역할을 하였다. 그들에게는 예술이 한가한 번외활동이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의 '발로'였다.

 수렵무를 통해서 그들은 사냥의 절차를 가르치고 습득하였고, 사냥의 성공의지를 고취한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였는데, 사실적으로 묘사하던 구석기에서 추상과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리던 신석기를 거쳐 미술의 사조는 계속 반복된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기법에서 인상파를 거쳐 현대미술에서는 구조가 해체되고 추상성이 강해진다.

 유목적인 마인드에서 농경정착민의 마인드로 바뀌었다가, 현대에 들어서 다시 '노마드', 즉 유목민의 마인드가 중요시되는 시대이다.

 예술이 주술이고, 주술이 예술이었던 시절과 지금은 다시 유사하다. 과거의 주술은 현대의 IT기술발달로 가상현실과 인터넷공간 등으로 다시 살아난다. 

 지금은 기술과 예술이 구분이 안되는 시절이다. 오늘 이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고, 다시 미래와도 오늘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역시 진중권의 책은 난해하고 쉽지 않다. 나름대로 풀어서 적긴 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P.S 감사합니다.^^)

 <강사소개>

 해헌(海軒) 강일송

 현 양산 물금증산의 양산세무서 6층과 7층 서울패미리병원의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림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과정(AFP) 수료.

 <저서> ▶우리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우리아이 변비와 야뇨증 거뜬히 이겨내기, ▶초보 육아 거뜬히 이겨내기, ▶더바이블 육아 소아과 수업 3권 시리즈.

 <※해헌의 독서파크는 사전에 작성된 원고로, 현재 시기와 변화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남성봉 기자  nam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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