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저자의 '상실의 시대'.(사진제공=해헌 강일송)

 오늘은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빅 퀘스천'이라는 컨퍼런스의 일곱 번의 강연 중 그 하나의 내용을 들어보려고 한다.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있은 이 컨퍼런스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주제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명사들이 하였었다.

 그 중 문학평론가이자 문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인문학 저자인 정여울의 강연을 살펴본다.

 그는 <공부할 권리>, <헤세로 가는 길>, <내가 사랑한 유럽>, <그림자 여행> 등 여러 저작이 있는 작가이다. <해헌(海軒) 주>

 [시작하며]

 오늘 "진정 나 자신이 되는 길은 무언인가"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겠다. '상실의 시대' 하니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 그 것이 가장 뼈 아픈 상실감이 아닐까.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부모도, 국가도, 성별도 선택할 수 없다.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나다움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걸 찾아가는 방법이 지성이고, 인문학이 아닌가 싶다.

 # '나 자신에 이르는 길, 그 참된 시작'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한 문장이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저는 서른 즈음에 많은 방황을 했는데, 이 때 만난 것이 카를 구스타프융의 분석심리학이다. 융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설명을 했는데, 그 중 저는 '그림자(shadow)'라는 것에 크게 매혹되었다.

 그림자는 페르소나(persona)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페르소나가 '가면'이라면 그림자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내 얼굴이다.

 # '내 그림자와 대면하기'

 융의 여러 개념 중에서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페르소나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굉장히 쾌활하고 적극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우울한 감정을 숨긴 채 끙끙 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생활을 위해 편집되고 윤색된 내 모습이 페르소나라면, 그와 반대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인 그림자인 것이다.

 이 그림자를 알아내고 대면하는 것이 진정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내 모습들이 그림자인데, 그림자는 어떤 결정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갑자기 분출되기도 한다. 저도 굉장히 화가 났을 때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되면 제 안의 '괴물'이 튀어나오는 것을 느끼곤 한다.

 # '내 안의 그림자와 만나기까지'

 융 심리학에는 '개성화'라는 개념이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 이게 바로 개성화이다.

 가수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직업적 자아가 아니라 내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존재,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길의 완성이 바로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남들 앞에서 부끄러웠던 기억, 매번 실패만 했던 기억 등 내 마음의 그림자를 깨달을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방어기제(defense system)'이다.

 방어기제는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나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나면 치유의 가능성이 열린다. 무의식과 의식의 만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림자의 중심에는 가족과의 갈등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그림자를 스스로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 '독서, 나다움을 묻는 질문과의 만남'

 그림자는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지만, 좋은 측면도 있다. 그림자를 인식함으로써 '진정한 나 자신'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나다워지는 것은 무언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저는 독서를 통해 내 상처가 무엇인지, 내 문제가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깨닫는다. 책을 읽는 행위는 정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심리적으로 굉장히 역동적인 작업이다.

 내 안의 상처를 들쑤시는 일, 타인의 상처를 통해 내 상처를 비춰보는 것이 독서이다. 책은 나를 더 아프게 하고, 더 슬프게 한 후 진정한 나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게 해준다.

 # '여행,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

 저는 여행을 좋아한다. 비록 길치이고, 방향치에다, 비행공포증도 있지만 가이드도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 중에는 돌발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이 때 '내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나'를 사용하게 된다.

 여행은 나도 모르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노출이 잘 된다. 나도 모르는 내 그림자가 나의 뒤통수를 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만나는 게 이제는 좋아졌다. '세린티피티'라고 한다. 나도 몰랐던 뜻밖의 우연, 그 우연 속에서 발견하는 나, 그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 '무의식에 숨은 나다움'

 "무의식은 너무 강렬하거나 고통스러워서 의식이 감당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기억의 저장소로 기능한다".- 프로이트

 무의식에 대해 프로이트는 이렇게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무의식에 숨은 나다움을 발굴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 그 것이 우리의 지성이고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다움을 찾는 길'

 <1> 사랑

 "사랑 때문에 저지른 어리석은 짓을 하나도 기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리어왕> 중에서

 나다움을 찾는 길, 그 중의 첫 번째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을 하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니까.

 사랑하기 전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던, 내 안에 꽁꽁 숨어있던 또 다른 내가 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랑은 내 안의 낯선 에너지를 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2> 우정

 "친구한 당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 하버드

 진정 나 자신이 되는 두 번째 길은 바로 우정인 것 같다. 우리가 진정 친구를 찾길 원한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항상 곁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정은 항상 내 곁에 있다. 저는 우정이야 말로 어떤 순간에도 삶을 견고하게 만들고 힘겨운 삶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3> 배움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사람은 학문을 숭배하고, 현명한 사람은 학문을 이용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

 이용한다는 말의 뉘앙스가 약간 가벼워 보이지만 모든 방면에서 학문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다.

 공부를 하여 자기 성찰을 이룰 수도 있고, 직업을 얻을 수도 있으며 더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4> 글쓰기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

 나다움을 찾는 마지막 비결은, 저에게는 글쓰기인 것 같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한 멋진 방법인 것 같다.

 또한 글쓰기는 적극적인 행위라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저는 글쓰기를 통해 제가 누구인지를 매일매일 깨닫는다.

 매일매일 한계에 부딪히고 자책도 하게 된다. 글쓰기야 말로 자기 자신을 찾는 최고의 길이 아닐까 싶다.

 [마치며]

 오늘은 '상실의 시대'라는 주제로 이뤄진 컨퍼런스에서 7인의 인문학자의 특강을 책으로 엮은 것을 보았다.

 그 중 문학평론가이자 인문학자 정여울씨의 '나를 찾고, 나다움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저자는 현대를 '상실의 시대'라고 먼저 규정을 짓고, 진정 어떻게 나다움을 찾을 수 있을지 풀어나간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기준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의 부모, 국가, 성별 등, 하지만 진정한 나는 거기에 담겨있지 않는다.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정신분석의 양대거장인 구스타프 융의 '그림자(shadow)' 이론을 저자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가면의 '페르소나'와 그 이면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림자'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구성한다.

 이 그림자는 아주 깊이 위치하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불편해하는 진실이지만 이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고 한다.

 저자는 '독서'와 '여행'을 통해 나다움을 찾고 스스로의 그림자를 만나는 시간을 가진다고 말한다. 독서는 정적인 활동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아주 역동적인 활동이고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들쑤시는 행위라고 한다.

 그럼으로서 진정한 나를 만난다고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전혀 낯선 상황에 나를 둠으로써 나의 깊은 곳의 그림자가 튀어 나오게 되고 그런 그림자를 만남으로 힐링의 단계로 들어선다.

 마지막으로 나다움을 찾는 저자의 방법으로 사랑, 우정, 배움,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하지 않을 때 시각으로는 사랑할 때의 행위들은 정상적이지 않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것을 동반하고 이럼으로써 자신의 숨어있던 모든 에너지가 분출된다.

 우정은 사랑에 비해서 온건하지만 오래가는 정서적 상태라고 한다. 좋은 친구를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라고 한다.

 배움은 독서와도 일맥상통하는데 배움을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은 글쓰기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아주 단단한 각오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단계라고 한다. 글을 씀으로써 매일매일 스스로의 본질을 만나게 되고,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자아의 외연을 확장해 나간다.

 오늘 정여울씨의 솔직하고 실제적인 나다움을 찾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것 또한 참고사항일 뿐이다. 

 모든 이가 다른 나를 가지고 있듯이 나다움을 찾는 방법도 다 제각각일 것이다. 어떤 이는 등산을 함으로써 자기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호흡이 터질 듯 달리기를 해야 만나기도 할 것이다.

 진짜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스스로를 만나는 길을 한 번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하다.

 <강사소개>

 해헌(海軒) 강일송

 현 양산 물금증산의 양산세무서 6층과 7층 서울패미리병원의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림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과정(AFP) 수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경영최고위 과정(AHP) 수료.

 <공동저서> ▶우리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우리아이 변비와 야뇨증 거뜬히 이겨내기, ▶초보 육아 거뜬히 이겨내기, ▶더바이블 육아 소아과 수업 3권 시리즈.

 <※해헌의 독서파크는 사전에 작성된 원고로, 현재 시기와 변화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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