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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헌의 독서파크(165)]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이소영>'서울패미리병원 해헌(海軒) 강일송 병원장
양산뉴스파크 | 승인2022.09.16 08:11
 이소영 저자의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사진제공=해헌 강일송)

 오늘은 평범했던 한 할머니가 미국의 국민화가가 된 따뜻한 이야기를 전개해본다.

 모지스 할머니(1860-1961)는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1세까지 살면서 그림 하나로 미국인들을 매료시켰다고 한다.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의 일상이 담긴 그림은 어느 유명화가의 그림보다 더욱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해헌(海軒) 주>

 [시작하며]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 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Grandma Moses

 우리가 늘 '모지스 할머니'라고 부르는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이다. 

 그녀는 1860년 미국 버몬트 주 경계와 가까운 뉴욕 주 그리니치의 가난한 농장의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사람들은 어린그녀를 '시시(Sissy)'라고 불렀다.

 '작은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이 소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매사에 긍정적이었으며 따뜻함을 잃지 않아 농부인 아버지를 도와 다양한 농사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소녀는 101살이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농장에서의 일들을 추억했다. 그녀에게 유년시절의 기억은 소중해서 영원히 버릴 수 없는 동화책과도 같았다.

 "시간이 나면 나는 창 밖의 풍경을 관찰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눈을 감고 추억들을 떠올리죠".

 그녀의 그림은 풍경과 친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집 앞의 하얀 울타리에서부터 활짝 핀 꽃나무, 유유히 풀을 뜯던 젖소들...

 그 시절, 형제가 많은 집안의 딸들에게는 무엇이든지 간에 기회가 부족했다. 물론 제대로 된 교육도 받기 힘들었다. 14살까지 학교를 다닌 뒤 근처 농장에서 가사도우미와 농장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딸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해서가 아니었고 그녀를 미워해서는 더 더욱 아니었다.

 1870년대 뉴잉글랜드 지역의 자녀가 많은 집, 특히 딸들이 있는 집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딸들의 평범한 직업은 가정부였다.

 대부분의 딸들은 가정부가 되었고, 아들들은 점원이 되어 자신의 몫을 해냈다. 다행히도 모지스가 가정부로 일하던 곳에서는 그녀를 가족처럼 대해주었고, 그녀가 학교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어린시절부터 그녀가 받은 이웃들의 온정은 훗날 그림속에 잘 남아있다.

 27살의 그녀는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 토머스 모지스와 결혼한다. 그리고 둘은 버지니아 주의 스탠턴 근처의 농장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결혼생활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행복했다. 10명의 아이들 중 다섯 아이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남은 다섯 아이와 삶을 살아간다.

 1927년 추운 겨울날, 남편 토머스가 심장마비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다. 그 후 결핵에 걸린 딸 애나를 간호해 주면서 손자들과 살던 모지스 할머니는 손자의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감을 가지고 그림 그리기에 도전한다.

 어릴 적 꿈이 화가였던 그녀를 여동생 셀레스티아가 누구보다 많이 응원해 준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에도 예술이 탄생되지만 가장 참혹하고 슬픈 순간에도 예술은 탄생된다. 남동생과 여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어린자녀들과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그 마음이 그림을 통해 오롯이 드러난다.

 어느 날 미술 수집가였던 루이스 칼더는 뉴욕주의 작은 시골 약국 벽에 걸린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발견하고 감동한다. 그리고 오토 칼리어라는 큐레이터는 뉴욕의 전시장에 그녀의 그림을 전시함으로 세상에 그녀를 드러내게 하였다.

 배우지 않은 소박한 손길로 그려진 그림들, 시골의 순수함이 가득한 그림들은 많은 도시인들을 매혹시켰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그녀의 작품과 사랑에 빠졌을까?, 바쁘게 지내던 뉴욕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을 통해 잃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도시로 떠나오기 전 유년의 고향, 가족과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 소박한 내 이웃들과 소통하는 것......

 그녀는 점차 유명해졌고 인기가 높아졌지만 늘 본인은 어색해했다. 1948년 뉴욕타임스는 모지스 할머니의 88년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실었다. 

 1950년은 그녀가 90살 되는 해였는데, 최초로 전국에서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다. 1952년 92살의 그녀는 <내 삶의 역사>라는 자서전을 출간했으며, 이듬해 <타임지>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들을 공동체 안에서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자신의 그림을 세상과 나누며 행복하게 지냈다.

 모지스 할머니는 말했다.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마치며]

 '약해지지마'라는 시집을 쓴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시집을 낸 그녀와 모리스 할머니는 참 비슷하다. 한 시대를 평범하게 살아낸 그들은 남들이 보기엔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열어 나간다.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10남매를 낳고, 그 중 다섯은 유아기 때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마지막엔 남편과 남은 딸과 아들도 먼저 하늘로 보낸 모지스 할머니. 

 그에겐 그림만이 유일한 힘이고 위안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전문화가가 아닌 그녀의 그림에서 유년의 추억, 그리운 고향, 도시의 삶에서 만날 수 없는 따뜻한 이웃의 정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인생에서 늦은 시기란 애초에 없고, 바로 지금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기라는 것을 말해주는 모지스 할머니.

 호기심 많고, 긍정적이고 매사에 따뜻했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오늘은 한 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모두들 따뜻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바타 도요-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강사소개>

  해헌(海軒) 강일송

  현 양산 물금증산의 양산세무서 6층과 7층 서울패미리병원의 병원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림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과정(AFP) 수료,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경영최고위 과정(AHP) 수료.

 <공동저서> ▶우리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우리아이 변비와 야뇨증 거뜬히 이겨내기, ▶초보 육아 거뜬히 이겨내기, ▶더바이블 육아 소아과 수업 3권 시리즈.

<※해헌의 독서파크는 사전에 작성된 원고로, 현재 시기와 변화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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