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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한국전쟁 때 '육군병원 운영' 흔적 발견대광명전 벽면 등에서 당시 부상병 낙서와 그림들 확인돼 '호국사찰' 역할 증명
남성봉 기자 | 승인2020.06.21 08:55
 70년 전 한국전쟁 참전 부상병들의 낙서가 발견된 통도사 대광명전 모습.(사진제공=통도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사찰 중 한 곳인 불보종찰 조계종 통도사(주지 이산 현문스님)가 6·25사변인 한국전쟁 당시 부상군인들을 치료하는 '육군병원'으로 활용된 것으로 나타나 '호국사찰'로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증명됐다.

 양산의 중학교 교사인 이병길 지역사 연구가가 6·25사변 후 존재했던 것으로 말로만 알려진 '통도사 육군병원'의 실체에 대해 증빙할 수 있는 증거자료들을 통도사가 발굴한 것으로 전해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병길 연구가는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한국전쟁 때 부상병들이 남긴 낙서를 발견, 통도사 육군병원인 '정양원'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통도사 육군병원의 경우 그동안 스님과 지역주민들에게는 알려졌으나 국가기록과 객관적 증거는 없었으며 통도사가 그 사실 확인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통도사의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1952년 조성 연기문이 발견됐으며 그 내용은 "6월 25일 사변 후 국군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하야 1952년 4월 12일에 퇴거(退去) 하였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이후 통도사는 상이군인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제31육군 정양원'의 본원이 부산 동래에 있었고 통도사는 '제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 또는 '제31 육군 정양원 (제2)분원'으로 불린 것을 알아내 이를 정립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현재 보광중학교에 다녔던 1932년생 졸업생 주민들은 통도사 천왕문에서 불이문까지의 하로전 영역인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등을 병원으로 사용했으며 전각마다 군인들로 가득차는 등 부상병들이 있는 곳에는 학생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것도 증언되고 있다.

 당시 하북면 보광중학교는 통도사 내 성보박물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전쟁으로 인해 학교가 병원으로 변해 환자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사망한 부상병들은 들 것에 실려 마스크를 끼고 M1 소총에 착검한 군인들이 통도사 화장터에 가서 화장하는 등 일부 상이군인은 마을의 여자와 결혼한 증언도 주민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경봉스님의 맏상좌로 통도사 주지와 영축총림 방장을 지냈던 비로암의 원명스님(1936년생)도 육군병원은 통도사 본절에만 있었으며 일부 스님들은 절에서 군인들에 의해 쫒겨났고 군인사망시 모두 모아서 화장했다고 증언했다.

 그동안 증언만 있었던 통도사 육군병원은 이병길 연구가도 확인자업 중 '대광명전'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상병의 낙서를 발견하게 됐다.

 이 낙서는 세 종류로 단기 4284년의 '연도낙서', 퇴원을 하면서 남긴 '낙서 시', 그리고 모자와 탱크·트럭 등의 '그림낙서'로 못, 연필, 칼 등을 이용해 새겨져 있다.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부상병들의 시, 낙서와 탱크그림.(사진제공=통도사)

 대광명전에 남겨진 낙서는 퇴원, 전우, 정전의 낱말, 군인모자와 탱크, 트럭그림은 통도사에 육군병원이 있었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증거로, 군인이 아니면 남길 수 없는 객관적 증거라고 이병길 연구가는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광명전에 새겨진 '이별의 낙서 시'에는 "4284년 5월 29일 도착해 6월 12일 떠나간다"라는 못으로 새긴 것으로 보이는 내용과 함께 연필을 이용해 "단기 4284년 4월 29일 퇴원(退院) 상자(傷者) 출발(出發)"이라는 문구도 남아있다.

 이와 함께 나무기둥에 칼로 새긴 '4284년 6월 10일 평양'이라는 문구의 낙서를 통해 연대기록은 조작이 아닌 당시의 것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에 낙동강 전투에 참전한 군인 중 평양출신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병원존재의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1951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이 제31 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에 정양 중인 장병들에게 양말 1,600족을 전달한 사실도 알려져 있다.

 당시 부상병들은 퇴원기념으로 "가노라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들아", "정든 통도를 떠나랴고 하려마는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 밖에 더 있느냐",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는 가련다", "전우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통도사에 이별한다" 등의 낙서를 남겼다.

 문자낙서 외에도 연필로 남긴 그림낙서에는 '아이얼굴', '모자', '모자 쓴 얼굴', '건물그림' 등이 있으며 대광명전 북쪽 바깥 마지막 칸에는 '탱크'와 '트럭'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밖에도 일부낙서에는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사랑하는 오빠", '이창규(李昌奎)', '진기준(陳基俊)', '김정례(金貞禮)', '김순동(金舜東)' 등의 이름도 있지만 상이군인 여부는 확인은 할 수 없었다.

 통도사의 대명광전은 7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벽면을 새로 보수하지 않아 한국전쟁 당시 제31 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정양원) 운영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병길 지역사 연구가는 "통도사 개산 1375년과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육군병원의 운영 흔적과 함께 통도사가 호국사찰이었음이 밝혀진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며 "지역의 소중한 역사적 흔적을 찾아 앞으로도 후손들이 영원이 잊지않게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남성봉 기자  nam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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