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와치야마의 마을입구에 있는 무연고 묘로 알려진 880여 기의 사기장들 묘./ 양산뉴스파크

 우리나라 도자기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탐방길은 그리 멀지않은 곳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의 사기장들을 강제로 끌고 간 그들이 사는 나라는 양산에서 출발해 부산에서 비행기로 가는데 통틀어 불과 90분이면 도착하는 가깝고도 먼나라인 일본이다.

 이번 일본의 방문은 양산 통도사에 가마를 두고 있는 '신정희 요'의 신한균 사기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NPO법기도자가 추진했다.

 신한균 사기장은 NPO법기도자의 이사장을 맡아 양산 동면 법기리에 존재했던 가마터의 복원과 함께 '우리사발의 흔적 되살리기'에 모든 것을 쏟고 있다.

 현재 사적 제100호로 지정돼 있는 '법기리 요지'는 일본 도자기 문화에 원조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곳으로, 양산시가 오는 2026년까지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이 일대 10만㎡ 부지를 개발할 예정이다.

 이 곳 법기리 요지는 당초 문화재보호구역을 2,161㎡로 구상해 발굴과 복원 등의 계획을 세웠으나 신한균 이사장의 법기리 요지에 대한 중요도 전파 등의 노력으로 예산을 포함, 개발범위가 약 5배로 확대 결정됐다.

 이에따라 NPO법기도자는 회원들과 법기주민 참가자 33명을 대상으로 일본 현지 도자기 마을 벤치마킹 탐방을 21일부터 23일까지 전개했다.

 이번 탐방은 일본 현지에서 찾아보는 조선사발의 흔적과 도자기를 이용한 일본지역의 홍보마케팅 실태, 앞으로 법기리의 관광화 개발방안 등의 모색을 위해 마련됐다.

공항 출국전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NPO법기도자의 회원들과 법기리 주민들./ 양산뉴스파크

회원 등이 탑승한 버스에서 탐방목적을 설명하고 있는 신한균 NPO법기도자 이사장(상단)과 오카와치야마의 도예 판매점(하단 왼쪽), 도예점에 전시된 작품들./ 양산뉴스파크

 [조선 사기장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오카와치야마']

 법기도자의 첫 날 방문지는 도자기 마을로 알려진 사가의 '오카와치야마(이마리)'와 '아리타'였다.

 오카와치야마는 약 5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도예촌으로, 아지자기한 마을의 정서 속에 거의 모든 가구가 도자기를 굽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입구에 연결된 교량에는 이 곳이 도자기 마을임을 알리듯 사금파리(깨진 도자기 조각)를 이용한 교량의 장식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금파리로 장식된 오카와치야마 입구의 교량(상단)과 '갓파' 도자기 작품(하단 왼쪽), 도자기 문패./ 양산뉴스파크

 이 마을의 원조가 조선의 도공들이었다는 것을 되내뇌이며 왼쪽 산 아래로 고개를 돌리자 무수한 무덤들이 보인다.

 일명 880여 기의 무연고 도공들의 묘.

 어쩌면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담보로 강제로 끌려와 끝내 고국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고 숨진 우리나라 조선도공들의 한(恨)이 담겨있는 흔적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쓰리다.

 묘지를 뒤로하고 NPO법기도자의 회원들과 법기리 주민들은 신한균 이사장의 설명과 소개로 이 마을의 곳곳을 둘러보고 가마 및 깨끗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도자기 마을의 관리형태도 눈에 담았다.

가마벽돌로 제작된 오카와치야마에 있는 담벽(상단)과 가마 앞에 방치돼 있는 미완성 도예작품들(하단 왼쪽), 도예 판매점에서 작품을 둘러보고 있는 신한균 이사장./ 양산뉴스파크

 법기리 요지의 앞으로 미래상을 스케치하는 소중한 자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의 도예품 판매점에 비치된 다양한 작품들 중 일본의 물귀신이라 불리는 민화 속 요괴 '갓파'를 도자기로 만든 것과 한 도예가 집 입구에 달려있는 '도자기 문패', 가마의 벽돌로 만든 담벼락이 관심을 끌었다.

 도자기 마을을 상징이라도 하듯 곳곳에 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게 도자기를 이용한 다양한 모습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리타 채석장에 있는 조선 사기장 이삼평의 동상./ 양산뉴스파크

 [일본 도예의 원조 이삼평을 만나다]

 오카와치야마의 방문을 마치고 다시 출발한 곳은 조선 사기장 이삼평(李參平)의 동상이 있는 아리타 도자기 마을의 채석장.

 그 곳에는 17세기 초반 조선의 사기장 이삼평이 일본으로 끌려온 뒤 도자기로 빚을 수 있는 용도의 돌을 발견해 가루를 내고 흙과 섞어 최초의 일본 현지 도자기를 만든 역사적 장소 '이즈미야마 채석장'이 있는 곳이다.

 이 채석장은 "400년 동안 하나의 산을 도자기로 바꾸었다"고 전해지며 지난 1980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사기장 이삼평이 도자기를 만드는데 사용한 돌을 설명 중인 신한균 이사장(상단), 이삼평의 실적을 기리는 비석(하단 왼쪽), 이삼평의 동상 뒷산에 보이는 붉은 물이 흐른 자욱./ 양산뉴스파크

 이를 증명하듯 이 곳에는 도자기 흙으로 사용하고 남아있는 일부 산의 겉벽들과 구멍이 뚫린 대형 터널형태의 흔적만 공허로이 남아있다. 

 채석장의 입구에는 가마의 벽돌로 제작된 20여 m 길이의 벽 속에 새겨진 '도공지비(陶工之碑)'라고 새겨진 비문과 이삼평이 도자기 흙을 발견했다는 장소를 기념하는 문구의 대형비석이 우뚝 서있다.

 또 바로 인근에는 돌로 제작돼 세워져 있는 석판에 '고려묘', '고려신'이라는 문구와 사진, 그 유래에 대한 해석까지 곁들인 내용의 안내석이 있다.

 신한균 이사장은 "당시 이 곳의 영주(다이묘) 나베시마는 조선의 사기장들을 납치해 끌고 온 뒤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는 지형에 가둬두고 최고의 도자기 생산을 강행했다"며 "조선인들이 만든 이 우수한 도자기들은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모두 진상됐다"고 설명했다.

이삼평이 발견한 아리타 채석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법기도자 회원과 법기마을 주민(상단), 가마벽돌로 만든 '도공지비'가 새겨진 벽담(하단 왼쪽), 아리타 채석장 설명 기념석./ 양산뉴스파크

 이 채석장을 지나 산길로 조금 올라가면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하얀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두손을 모은 채 지긋하게 눈을 감고 앉아있는 백발의 노인동상이 보인다.

 바로 일본의 도자기 역사를 바꾼 사기장 이삼평의 동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낡고 초라한 그의 동상 앞에 놓여 있는 이름모를 방문객들이 두고간 몇가닥의 민들레 꽃들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달래주고 있다.

 그의 동상이 있는 뒷산의 줄기에는 붉은 색을 띈 흙물이 타고 내려와 한 줄기의 눈물을 연상케 하면서 조선 사기장들의 애완을 대변하는 듯 하다.   

 우리의 것(기술)임에도 강제로 빼앗긴 분함과 평가에 비해 일본의 허술한 흔적관리에 대한 억울함은 이삼평의 동상을 보며 느낀 모두의 감정일 것이다.

 회원들과 주민들은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적 흔적을 체험한 이 곳들의 탐방을 모두 마치고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며 첫 날 일정을 마감했다.